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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위기 언제까지] “고부가가치 쌀 생산만이 살길”
쌀값 하락이 농촌 붕괴의 전주곡(前奏曲)인 것만은 아니다. 앞서가는 농민들은 환경친화적인 새 농법으로 고부가가치 쌀을 생산하거나 인터넷 등을 통한 자체 유통망을 갖추고 쌀값 하락과 쌀시장 개방의 파고(波高)를 헤쳐가고 있다.
지난 12일 전남 강진군 신전면. 강진만(灣)의 끝자락에 위치한 영동농장에선 7명의 직원이 왕겨와 미생물을 섞어 발효시킨 퇴비를 논에 뿌리고 있었다. 모내기를 앞두고 지력(地力·땅의 생산력)을 높이는 작업이었다.
20만평 땅에 벼농사를 짓고 있는 농장 주인 김태정(32)씨는 올해도 벼에 음악을 들려주는 독특한 농법으로 벼를 키울 계획이다. 벼가 자라기 시작하면 논 주변에 스피커 40개를 설치, 오전엔 모짜르트의 감미로운 클래식을, 오후엔 강렬한 리듬의 사물놀이 음악을 튼다. 농약과 화학비료는 전혀 쓰지 않는다. 김씨는 지난 97년부터 ‘그린 음악 농법’이란 이름으로 이처럼 특이한 농사를 지어왔다.
그는 “대학교에 다닐 때 ‘장미도 음악을 들으면 춤을 춘다’는 강의를 듣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음악을 들은 벼는 길이가 짧아지는 대신 밑동이 두꺼워져 튼튼해지고, 음악 파동(波動)은 해충에 스트레스를 줘 쫓아내는 효과가 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그린 음악 쌀’은 일반 쌀보다 2배 가량 비싸다. 하지만 생산 물량은 거의 전량 팔려나가고 있다. 농법 도입 이후 처음 3년 동안은 비료를 쓰지 않아 생산량이 줄었으나, 지금은 예전 수준을 회복했다.
김씨는 “영동농장의 순익은 일반적인 농법으로 지을 때보다 15%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영동농장 같은 친환경농법 이외에 ‘브랜드 쌀’을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와 직거래 하는 ‘유통 혁신’도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충남 당진의 미작농 박수현(41)씨는 작년 11월부터 홈페이지(ssalsarang.farmkr.net)를 개설, ‘흙돌이와 밥순이’란 브랜드 쌀을 팔고 있다.
박씨는 “살아남기 위해선 농민 스스로 쌀 품질을 높여 ‘제 쌀 제값 받기’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들여 키운 벼를 미곡종합 처리장(대형 쌀 유통업체)으로 보내면 저품질의 벼와 뒤섞여 팔리고, 그러면 이름 없는 쌀로 전락해 제값을 못받게 된다는 것이다.
전남 해남군 옥천농협은 아예 농협 차원에서 ‘지역 브랜드’를 만들어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지난 94년부터 관내 3000여 농가에서 계약 재배한 쌀에 ‘한눈에 반한 쌀’이란 브랜드를 붙여 서울의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점에 팔고 있다. 98년부터 홈페이지(okrice.com)도 만들었다.
옥천농협의 브랜드 쌀은 일반 쌀보다 30~40%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옥천농협 임창석 상무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비자에게 품질 높은 브랜드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 놓아야 쌀시장 개방 이후에도 외국쌀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99년 일본이 쌀시장을 개방했을 때 일본 쌀이 수입쌀보다 80% 이상 비쌌지만 시장은 거의 빼앗기지 않았다. 일본 쌀이 소비자들에게 수입 쌀보다 밥맛이 좋고 안전하다는 신뢰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농촌경제연구원 이정환 부원장은 “단기적으로는 고품질 브랜드 쌀의 인터넷 거래로 활로를 찾고, 장기적으로는 농가들이 연합해 시·도 단위의 큰 규모 브랜드를 만들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덴마크나 네덜란드의 축산가공품,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처럼 국가나 주(州) 단위의 단일 브랜드를 만들어야 브랜드 파워가 강해지고 소비자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또 앞으로 쌀 농사 규모를 대형화해야 외국 쌀과 경쟁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국내 논농업 농가(105만) 중 1500평 미만의 농사를 짓는 농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42.3%. 땅 값과 인건비가 비싼 우리 현실에선 소규모 농가가 아무리 생산비를 줄인다 해도 값싼 외국 쌀과 경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농림부 안종운 차관보는 “이제는 농가도 규모를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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